다섯 번째 커튼콜
December 28, 2023

좋은 음악, 탁월한 연주. 원 없이.

나는 ‘아름다운 것들은 탄탄한 기술력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너무나 탁월한 연주력을 가진 이들과 함께한 덕분에 이번 공연을 위해 정말 마음껏 상상하고, 과감하게 요청할 수 있었다. ‘연주랑 토크랑 번갈아가면서 진행해주세요’, ‘아무도 보지 않고 웅성웅성거려도 그냥 연주해주세요’, ‘깜깜한 백스테이지에서 걸어나오며 연주해주세요’, ‘혼자 합창석에 올라가 연주해주세요’ ㅡ 뭐, 이런 요상한 것들 말이다.

note 1) 가끔 @yeoleum 은 공연장 로비에 어떤 음악이 흐르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공연은 늘 새로운 시공간의 차원이 열리는 것과 다름 없으니 공연장에 들어오자마자 일상과 다른 경험이 시작된다면 어떨까? 그래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을 꿈꿔보면서, 모두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본공연 20분 전부터 조명도 켜지 않은 무대에서 짧은 연주 조각들을 나누었다.

note 2) @ma.sih의 “나르키소스”를 듣고 노트를 읽으며: 과도한 자기애로 점철된 ‘나르시즘’이나 과격한 자학으로 무장된 ‘에코이즘’ 모두 타자와의 왜곡된 관계 설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미 기발한 음향 효과로 모자랄 것 없는 음악이지만 - 무대 위 합창석에서 연주한다면 이 중의적인 의미를 보다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 자체로 자아도취의 내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때로는 이 스포트라이트 바깥 세상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찰나가 있지 않나? 그러다보면 나를 향한 모든 눈길이, 단지 평가를 위한 시선만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평소 스스로를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인 나에게, 오히려 세상은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누군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위치에서 다소 낯선 음악이 시작될 지라도 마음을 열고 뭐야? 뭐야? 하면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처럼.

note 3) 이와중에 나를 제일 행복하게 한 건 역시나 두 명의 디테일 장인이 만든 것들이었다. @kimkmss 가 구성한 상/하수 동시 입장이나 @yeoleum 이 만든 그림 같은 엔딩... 휴... 귀신 같은 사람들... 아니, 이 분들은 ‘사람 같은 귀신들’이 더 맞을 수도...

탄탄한 연주력, 센스, 집중력, 그리고 ”다같이 멋진 거 하나 만들어보자!“는 마인드. 누군가 이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절대 이 공연이 완성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다. 한 곡 한 곡을 각 사람의 ‘컬렉션’이라 생각하고 미술관의 방 곳곳을 꾸미듯 만들어 본 올해 #커튼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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